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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마태복음

마태복음 9:9–13과 구약과의 상호텍스트성 연구

by 아하바 2025.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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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9:9–13과 구약과의 상호텍스트성 연구
— 신명기, 이사야·출애굽기, 호세아 본문과의 대화 —


I. 서론

  1. 연구 목적과 문제 제기
  2. 본문(마 9:9–13)의 구조 개요
  3. 상호텍스트성 연구 방법론

II. 마태의 부르심과 신명기 전통

  1. “나를 따르라(ἀκολούθει μοι)”와 신 13:4의 “여호와를 따르라(אַחֲרֵי יְהוָה ... תֵּלֵכוּ)”
  2. 신 13:4의 여섯 동사 구조와 제자도의 총체성
  3. 예수의 자기 계시: 여호와의 자리에서 “나를 따르라”

III. 세리와 죄인과의 식탁, 그리고 이사야·출애굽기의 배경

  1. 이사야 25:6의 종말론적 구원 잔치와 예수의 식탁
  2. 이사야 58:6–7의 금식 비판과 긍휼 중심의 예배
  3. 출애굽기 24:11의 언약적 식사와 죄인과의 식탁 교제
  4. 시편 1편과의 긴장: “죄인과 함께 앉지 않는다” 전통의 전복
  5. 당시 세리와 죄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문화 배경)

IV. “나는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 – 호세아 6:6의 신학

  1. 호세아 6장의 언약 배경과 형식적 제사의 문제
  2. חסד(헤세드)와 “하나님 아는 지식”의 의미
  3. 마 9:13에서의 인용: 긍휼을 중심으로 재구성된 예배
  4. 바리새인 비판의 뉘앙스: “하나님을 아는 것인가?”

V. 종합적 고찰

  1. 신명기–이사야·출애굽기–호세아의 삼중적 상호텍스트성
  2. 제자도, 공동체, 예배 신학에 주는 교훈
  3. 마태 공동체의 정체성 형성

VI. 결론

  1. 본문 해석의 신학적 의의
  2. 오늘날 교회와 공동체에 주는 함의

 


 

 


I. 서론

1. 연구 목적과 문제 제기

마태복음 9:9–13은 예수께서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고, 이어 세리와 죄인들과 식탁 교제를 나누는 장면을 담고 있다. 이 본문은  예수의 자기 계시, 제자도의 본질, 그리고 참된 예배에 관한 신학적 논쟁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나를 따르라”는 예수의 부르심과 “나는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는 선언은 구약 전통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예수의 행위와 말씀은 성경적 맥락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임이 확인된다. 본 연구는 이 본문을 구약과의 상호텍스트성의 관점에서 분석하여, 예수의 행위가 어떻게 구약 전통을 성취하면서 새로운 공동체 정체성을 형성하는지를 탐구하고자 한다.

2. 본문(마 9:9–13)의 구조 개요

본문은 세 개의 주요 장면으로 나눌 수 있다. (1) 예수께서 세리 마태를 부르시는 사건(9:9), (2) 세리와 죄인들과의 식사 장면(9:10), (3) 바리새인들과의 논쟁 및 호세아 6:6 인용(9:11–13). 이 세 장면은 각각 제자도의 출발, 하나님 나라 식탁의 실현, 참된 예배와 긍휼의 본질을 드러내며, 구약 전통과의 연결을 통해 신학적 의미가 더욱 심화된다.

3. 상호텍스트성 연구 방법론

본 연구는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의 방법론을 적용한다. 이는 신약 본문이 구약 본문을 직접적으로 인용하거나 암시하는 방식뿐 아니라, 동일한 주제·이미지·담론 구조 속에서 구약과 대화하는 과정을 탐구하는 해석학적 접근이다. 마태복음 9:9–13은 신명기, 이사야·출애굽기, 호세아, 시편 등과 다층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예수의 권위와 사역이 성경 전체의 신학적 맥락 속에서 자리매김한다.

 


Ⅱ. 마태의 부르심과 신명기 전통

1. “나를 따르라(ἀκολούθει μοι)”와 신 13:4의 “여호와를 따르라(אַחֲרֵי יְהוָה … תֵּלֵכוּ)”

마태복음 9:9에서 예수께서는 세리 마태를 향해 “나를 따르라(ἀκολούθει μοι)”고 부르신다. 이 명령형 동사는 마태복음 전체에서 제자도 소명을 드러내는 핵심 동사이며(4:19; 8:22; 19:21), 전 인격적 삶의 방향 전환을 요구하는 표현이다. 구약의 배경 속에서 가장 밀접한 평행 구절은 신명기 13:4이다. 그곳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너희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을 따르라(אַחֲרֵי יְהוָה … תֵּלֵכוּ)”고 명령하며, 이는 언약 백성의 삶의 근본 원리를 요약하는 언어였다. 따라서 예수의 “나를 따르라”는 부름은 제자로의 부름을 포함할 뿐 아니라 여호와께만 적용되던 신명기의 요청을 자신의 권위로 선포하는 자기 계시적 발언이다.

2. 신 13:4의 여섯 동사 구조와 제자도의 총체성

신명기 13:4는 “따르다(תֵּלֵכוּ), 경외하다(תִירָאוּ), 지키다(תִּשְׁמָרוּ), 듣다(תִשְׁמָעוּ), 섬기다(תַעֲבֹדוּ), 붙다(תִדְבָּקוּ)”라는 여섯 동사로 구성된다. 이 구조는 제자의 삶이 단순히 한 가지 행동이 아니라 삶의 방향, 태도, 실천, 순종, 예배, 관계의 전 영역을 포함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께서 마태를 향해 하신 부르심은 이러한 신명기적 요구를 압축하는 동시에, 그 실현의 중심을 예수 자신에게 둔 것이다. 곧, 마태의 즉각적인 순종은 단순한 직업 포기 행위가 아니라, 신명기적 신앙의 총체적 실천이 예수 안에서 새롭게 성취되는 장면이다.

3. 예수의 자기 계시: 여호와의 자리에서 “나를 따르라”

마태는 이 짧은 부르심 서술 속에서 예수의 정체성을 암묵적으로 드러낸다. 신명기 전통에서 “따름”은 오직 여호와께만 적용되는 언약적 헌신이었다. 그런데 예수는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여 자신을 따르라고 명령하신다. 이는 단순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넘어서, 예수가 여호와의 자리에 서 계심을 내포하는 자기 계시적 선포이다. 나아가 마태가 곧바로 일어나 예수를 따랐다는 기록(9:9 하)은, 신명기에서 요구되던 온전한 헌신이 예수의 부름 앞에서 실제로 실현되는 사건으로 제시된다.

 


Ⅲ. 세리와 죄인과의 식탁, 그리고 이사야·출애굽기의 배경

1. 이사야 25:6의 종말론적 구원 잔치와 예수의 식탁

이사야 25:6은 여호와께서 모든 민족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한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신다고 선포한다. 이는 죽음을 삼키고 모든 눈물을 씻어주시는 구원 사건의 표징으로 나타난다(사 25:7–8). 마태복음 9:10에서 예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신 장면은, 사회적 주변부와 배제된 자들을 포함한 하나님 나라의 식탁을 예표하는 사건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곧, 이사야의 종말론적 잔치가 예수의 현재적 행위 속에서 부분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2. 이사야 58:6–7의 금식 비판과 긍휼 중심의 예배

이사야 58장은 금식의 형식을 지키면서 동시에 억압과 착취를 행하는 이스라엘을 강하게 책망한다. 참된 금식은 굶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고, 유리하는 자를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입히는 긍휼의 행위라고 선언한다. 예수께서 세리와 죄인과 함께하신 식탁은, 바리새인들이 중시했던 금식 규례보다 더 본질적인 긍휼의 예배를 구현한 사건이다. 이는 이후 9:13에서 호세아 6:6을 인용하시는 예수의 말씀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3. 출애굽기 24:11의 언약적 식사와 죄인과의 교제

출애굽기 24:11은 시내산 언약 체결 후 모세와 장로들이 하나님 앞에서 식사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이는 하나님과의 언약적 친교를 식탁으로 표현한 대표적 본문이다. 마태복음 9:10의 식탁은 이 언약적 식사 전통을 반향하며, 예수와 죄인들의 교제가 새로운 언약 공동체 형성의 사건임을 암시한다. 곧, 출애굽기의 신적 임재 앞 식탁이 이제 예수의 임재 속 식탁으로 재현되는 것이다.

4. 시편 1편과의 긴장: 죄인과 함께 앉지 않는다 전통의 전복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을 정의할 때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자로 묘사한다. 바리새인들은 이 전통에 따라 죄인과의 교제를 단호히 거부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오히려 죄인과 함께 식사하심으로써 참된 의로움은 분리와 배제가 아니라 긍휼과 회복을 통한 공동체 형성에 있음을 드러내셨다. 이는 전통적 해석의 전복이며, 하나님 나라 윤리의 혁신적 선언이었다.

5. 당시 세리와 죄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문화 배경)

1세기 유대 사회에서 세리는 로마 제국을 위해 세금을 징수하며, 종종 착취와 불의를 자행하는 자로 간주되었다. 이들은 정치적 협력자로서 사회적 배척의 대상이었으며, 종교적·윤리적 타락자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들의 죄가 반드시 율법적·도덕적 범죄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죄인 범주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세리, 죄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을 하나님 나라 공동체로 포용하신 사건으로 이해된다.

 

- 세리에 대한 인식

1세기 유대 사회에서 세리는 로마 제국의 하청 징세업자로 활동했다. 로마는 세금을 직접 거두지 않고, 일정 금액을 미리 제국에 바친 후 실제 징수 과정에서 초과 징수로 이익을 남기는 방식을 사용했다. 따라서 세리는 종종 과도한 세금 착취부정한 이익을 취하는 자로 비난받았다. 더 나아가, 로마의 정치적 지배에 협력하는 자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세리는  민족적 배신자로 취급되었다. 이 때문에 라삐 문헌에서는 세리와 강도, 창기 등을 같은 범주로 묶으며, 그들의 증언조차 법정에서 신뢰하지 않았다.

- 죄인에 대한 인식

마태복음에 자주 등장하는 “죄인”(ἁμαρτωλοί)은 반드시 율법을 노골적으로 위반한 범죄자를 뜻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사회적 규범에서 “의인”이라 불린 바리새인·율법학자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율법을 충분히 지키지 못하거나 경건 규범에서 배제된 자들을 가리켰다. 농민, 가난한 자, 직업상 부정한 영역에 종사하는 자들이 이 범주에 포함되었다. 따라서 “죄인”은 종종 사회적 낙인의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 식탁 교제의 상징성

유대 사회에서 식탁 교제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종교적·사회적 경계의 확인 행위였다. 바리새인들은 부정하거나 경계 밖에 있는 사람과 식사하는 것을 피했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의로움”을 보존하고자 했다. 그렇기에 예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신 사건은 단순한 우정이나 선교적 접근이 아니라, 경계선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공동체 질서를 세우는 행위였다.

- 신학적 함의

세리와 죄인은 당대 유대 사회에서 사회적 합의에 의해 죄인으로 낙인찍힌 자들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들과 함께 식탁을 나누심으로써, 사회적 배제와 낙인의 구조를 전복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긍휼이 배제된 자들에게 먼저 임한다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 선포였다.


 

Ⅳ. “나는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 – 호세아 6:6의 신학

1. 호세아 6장의 언약 배경과 형식적 제사의 문제

호세아 6장은 북이스라엘이 겉으로는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호 6:1)고 선포하지만, 그 고백은 실제적 삶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 위선적 경건임을 고발한다. 백성들은 언약적 불순종 가운데서도 예배 의식과 제사 행위만으로 하나님의 호의를 얻을 수 있다고 착각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사랑이 “아침 구름 같으며, 이른 이슬같이 사라진다”(호 6:4)고 말씀하시며, 그들의 경건이 본질적으로 덧없음을 폭로하신다.

 

이 배경에서 6:6의 선언—“나는 인애(חֶסֶד)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노라”—는 예배와 언약의 본질을 재정의하는 결정적 구절로 작용한다. 하나님은 제사 제도 자체를 폐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제사의 본래 목적이었던 언약적 충실성과 하나님 아는 삶이 상실된 상태에서 반복되는 형식적 예배가 아무 의미 없음을 강조하신 것이다. 따라서 본문의 핵심은 예배 행위의 무가치함이 아니라, 언약 관계 안에서의 진실한 충성의 결핍이다.

다.

2. חֶסֶד(헤세드)와 “하나님 아는 지식”의 의미

히브리어 חֶסֶד(헤세드)는 구약 전체에서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과 신실성을 나타내는 핵심 용어다. 이는 언약 관계 안에서 요구되는 충성, 헌신, 신실한 사랑을 지칭한다. 즉, 하나님께서 먼저 언약적 사랑을 베푸셨으므로, 백성들은 삶으로 그 사랑에 응답해야 했다.

이어지는 “하나님 아는 것”(דַּעַת אֱלֹהִים) 역시 관계적이고 실천적인 앎을 뜻한다. 성경에서 “안다”(ידע)는 종종 친밀한 언약적 경험을 표현한다(창 4:1; 아모스 3:2). 따라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의 성품을 경험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사는 삶 전체를 가리킨다.

결국 호세아 6:6은 참된 경건이란 제사의 횟수나 규모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긍휼과 정의를 실천하는 삶임을 선언한다. 이것은 예배의 본질이 제물의 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적 충실성과 삶의 실천에 있음을 드러내며, 이후 예언자 전통 속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주제(사 1:11–17; 미 6:6–8)로 발전한다.

3. 마 9:13에서의 인용: 긍휼을 중심으로 재구성된 예배

예수께서는 바리새인의 비난(“너희 선생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잡수시느냐”)에 대한 답변으로 호세아 6:6을 인용하신다. 이 인용은 예수의 식탁 사역 자체가 참된 예배의 구현임을 선언하는 신학적 전환점이다. 곧, 세리와 죄인과의 교제는 율법적 정결 규례를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제사 행위 — 곧 긍휼의 실천 — 이라는 것이다.

4. 바리새인 비판의 뉘앙스: “하나님을 아는 것인가?”

예수께서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 하신 뜻을 배우라”고 하신 말씀은, 바리새인들이 성경을 알면서도 본질을 놓쳤음을 고발한다. 이 명령은 호세아 6:6의 영적 의미를 삶으로 실천하라는 촉구이다. 결국 예수는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과연 하나님을 아는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신 것이다.

 


 

Ⅴ. 종합적 고찰

1. 신명기–이사야·출애굽기–호세아의 삼중적 상호텍스트성

마태복음 9:9–13은 신명기, 이사야·출애굽기, 호세아 본문과의 삼중적 상호텍스트성을 통해 읽힐 수 있다. 신명기의 “여호와를 따르라”(신 13:4)는 요청은 예수의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 속에서 여호와의 권위가 예수 안에서 실현됨을 보여준다. 이사야와 출애굽기의 식사 전통은 예수의 세리·죄인과의 식탁 교제 속에서 새로운 언약 공동체의 형성으로 확장된다. 호세아의 제사 비판은 예수의 선언을 통해 긍휼 중심의 예배 신학으로 재해석된다. 이처럼 세 구약 전통은 마태의 서술 속에서 서로 연결되며, 예수의 자기 계시와 제자도 교훈을 강화한다.

2. 제자도, 공동체, 예배 신학에 주는 교훈

마태의 부르심은 제자도의 출발점으로, 신명기적 총체적 헌신의 갱신을 의미한다. 세리와 죄인과의 식탁은 공동체의 경계를 새롭게 설정하며, 사회적·종교적 배제의 논리를 뒤집는다. 마지막으로 호세아 인용은 예배 신학의 중심이 제사 형식이 아니라 긍휼의 실천에 있음을 천명한다. 따라서 본문은 제자도, 공동체, 예배라는 세 축을 아우르며 마태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신학을 드러낸다.

3. 마태 공동체의 정체성 형성

마태 공동체는 유대교 전통 속에 뿌리를 두면서도, 예수의 사역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해야 했다. 이 본문은 바로 그 정체성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공동체는 더 이상 율법적 경계선에 의해 구별되지 않고, 예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제자들, 그리고 긍휼을 실천하는 자들에 의해 규정된다. 이는 공동체가 자신들의 신앙적 정체성을 구약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새롭게 재해석된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 속에서 확립해야 함을 보여준다.


 

Ⅵ. 결론

마태복음 9:9–13은 예수의 자기 계시와 공동체 정체성 형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본문이다. 예수께서 세리 마태를 부르시며 “나를 따르라” 하신 말씀은 신명기 전통에서 오직 여호와께만 적용되던 언약적 헌신의 요구를 자신의 권위로 선포하신 사건이었다. 이는 제자도의 본질을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전적 응답으로 새롭게 규정한다.

또한 세리와 죄인과의 식탁 교제는 단순한 사회적 친교가 아니라, 이사야와 출애굽기의 언약적 식사 전통을 새롭게 성취하는 장면이었다. 배제와 분리를 통해 의를 추구하던 당시 종교적 사고와 달리, 예수의 식탁은 긍휼과 포용을 통한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도래를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호세아 6:6의 인용은 제사의 형식보다 긍휼과 하나님 아는 지식이 본질임을 선언하며, 예수의 사역 자체가 참된 예배임을 드러낸다. 이는 바리새인들의 율법 중심 경건을 넘어,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삶의 실천을 신앙의 핵심으로 제시한다.

따라서 본문은 세 가지 차원—제자도의 헌신, 공동체의 포용, 예배의 본질—을 통해 마태 공동체의 신학을 형성한다. 예수는 구약 말씀을 자기 안에서 성취하며 새롭게 해석하셨다. 마태복음 9:9–13은 바로 그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 본문으로, 오늘날 교회에도 제자도, 공동체, 예배를 다시금 성찰하게 하는 신학적 통찰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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