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셀 나무
(안산동산교회 큰숲맑은샘 2010년 9월호 칼럼)
이스라엘에는 왕관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나무가 있습니다. 오늘의 주제어, “에셀나무”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공부했다고 모든 유학생들이 한 사물에 대해서 다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 같은 경우는 에셀 나무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반짝반짝입니다. 왜 에셀 나무가 반짝거리느냐. 그 이유는 잎사귀 마다 맺혀 있는 물기 때문입니다. 신기하게도 에셀 나무의 가느다란 잎에는 염분이 있습니다. 잎을 혀에 살짝 대어보면 짠 맛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염분이 에셀 나무 잎들이 품고 있습니다. 이 염분으로 인해서 밤 사이에 이슬이 내렸다면, 에셀 나무의 잎사귀에는 다른 나무들에 비해서 훨씬 더 많은 이슬이 촘촘히 맺힌답니다. 아침이 되어 해가 뜨면 에셀 나무는 그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게 된답니다.
이렇게 빛나는 나무를 상상해 보세요. 얼마나 보기 좋을까요. 더더군다나 에셀 나무가 자라는 곳은 주로 네게브 지역입니다. 이 네게브 지역은 이스라엘의 남쪽 지역으로, 연강수량 50mm밖에 되지 않는 곳이기도 하며, 일년 내도록 더운 지역입니다. 나무가 있으나 연강수량이 적으므로 울창한 나무를 보기 드문 곳이고, 울창한 숲이라고는 전혀 없는 곳이 바로 이 네게브 지역입니다. 이런 네게브 지역에 꿋꿋하게 자라 있는 에셀 나무를 상상해 보세요. 아침 햇살을 받아서 그 어떤 나무들보다 반짝거려서 돋보이는 나무가 그려지시는지요. 왕관처럼 반짝반짝거리는 나무가 그려지십니까.
에셀 나무의 특징은 반짝반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에셀 나무의 그늘은 다른 나무의 그늘보다 훨씬 시원합니다. 그 이유 역시 잎사귀의 맺힌 이슬 때문입니다. 해가 뜨면 그 햇살이 뜨거워지면서 맺혀 있는 이슬이 점점 증발하게 되겠죠. 그 증발열로 인해서 에셀 나무의 그늘은 다른 나무의 그늘보다 훨씬 시원한 것입니다. 에셀 나무가 주로 서식하는 곳은 일년 내도록 뜨거운 지역인 네게브입니다. 섭씨 35도와 25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일테면 네게브의 온도가 섭씨 35도인데, 에셀 나무 아래 들어갔더니 섭씨 25도입니다. 필리핀이나 우리 나라의 고온다습한 무더위 속에서의 그늘이 아니라 건조한 지역에서의 그늘입니다. 네게브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에셀 나무는 어떤 나무였을까를 연상한다면 틀림없이 아주 멋진 안식처가 되었을 것입니다.
에셀 나무의 또 다른 특징이 있는데, 강인한 생명력이 그것입니다. 에셀 나무가 주로 서식하는 곳이 네게브라고 위에서 언급을 했습니다. 올해 우리 나라의 여름의 비는 참 대단했습니다. 하늘에서 구멍이 뚫렸는지 비가 그냥 쏟아 부어졌습니다. 70mm 내렸다, 110mm 내렸다 등의 뉴스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네게브 지역은 일년 강수량이 50mm 이하입니다. 이런 지역에서 어떻게 나무가 씩씩하게 잘도 자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에셀 나무의 뿌리입니다. 에셀 나무의 뿌리가 30m까지 내려 지하수를 흡수하고자 하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셀 나무는 건조한 네게브 지역에서 잘 견디게 된답니다.
사람들은 멋있어 보이는 나무, 특별한 나무를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에게도 그런 경향이 있는데, 종교성이 강했던 고대인들은 더더욱 강했을 것입니다. 네게브 지역에 크고 웅장한 에셀 나무가 있다. 반짝거리는 나무, 시원한 나무, 생명력이 뛰어난 나무입니다. 고대인들은 어떻게 그 나무를 대했을까요? 에셀 나무 곧 신성한 나무가 되어서 고대의 가나안 사람들은 거기서 자기네들의 종교 퍼포먼스를 펼쳤습니다. 한마디로 온갖 우상들이 난립했던 나무가 바로 이 에셀 나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 에셀 나무에 대한 반전 드라마가 그려져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때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창21:33)
온갖 우상들의 말들, 우상들의 의식들이 무성했던 에셀 나무였습니다. 그 나무를 아브라함이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에셀 나무에서 잡신들을 섬겼지만 아브라함은 에셀 나무에서 하나님 여호와께 예배하기로 작정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에셀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였습니다. 아마도 네게브를 통과하는 여행객들이 에셀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노라면 아브라함은 찾아가서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그들에게 전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가나안 땅까지 자기를 이끌었는지, 어떤 약속을 주셨는지, 어떻게 아들을 주셨는지를 자랑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이면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 주변은 여전히 우상들을 떠받드는 곳들이 참 많습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그 안타까운 모습들을 보고만 있을까요? 우리가 한번 반전 드라마를 만들어가면 어떨까 싶습니다. 아브라함처럼 말입니다. 왜 ‘용도변경신청서’라는 서류가 있지 않습니까. 지금까지는 우상을 노래했던 곳이었지만 그곳을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곳으로 용도변경 신청서를 작성하고 작업에 들어가면 어떨까요. 작게는 내 주변에서, 더 나아가서는 우리 지역에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시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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