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여~ 돌이 되십시오.
(안산동산교회 큰숲맑은샘 2010년 10월 칼럼)
오늘 제목을 한번 보십시오. 이 칼럼을 읽고 있는 여러분에게 저는 “돌이 되라”고 당부를 드리고 있습니다. 무슨 이런 뚱딴지 같은 말입니까. “부자가 되십시오”라는 말이면 훨씬 더 듣기 좋을텐데 부자가 아니라 돌이 되라니요. 도대체 돌에 어떤 의미가 있기에 저도 돌이 되어야 하고, 여러분도 돌이 되어야 할까요?
옛날 사람들은 돌을 숭배했습니다. 지난 달의 칼럼에서 말씀드린 바대로 에셀나무처럼 멋있어 보이는 나무도 숭배했지만 뭔가 특이한 바위, 돌에도 신령함을 부여해서 숭배했습니다. 왜 고대인들은 돌을 숭배했을까요? 여러분들은 바위와 돌을 생각하시면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이 비슷할 것 같습니다. 즉 바위와 돌에는 견고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위와 돌에는 요동함이 없습니다. 바위나 돌에는 신이 가지고 있는 견고함이 있기 때문에 고대인들은 이런 바위나 돌에 신령함을 부여하여 숭배했습니다. 어떠한 바람이 불어도 바위, 돌은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어떠한 태풍이 불어도 그 모습 그대로 있는 것이 바로 돌입니다. 눈이 오고, 비가 오고, 심지어는 우박이 내려쳐도 돌은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이런 변함이 없이 견고한 돌의 모습을 통해서 고대인들은 신을 연상했습니다. 또한 고대인들이 생각하는 신의 특징 중에서는 존재의 영원성이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신은 사람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고, 또 자신이 죽고 난 뒤에도 여전히 동일한 모습으로 존재해 있습니다. 신이란 변하기 쉬운 인간과는 달리 한결같아야 합니다. 만약 변하기 쉬운 신이라면 섬김의 대상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존재의 영원성의 닮은 꼴을 고대인들은 돌에서 찾았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돌이, 주변에 굴러다니는 모든 돌을 다 신령하게 취급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숱하게 오랜 세월 속에서 여전한 모습으로 존재해 있는 돌만이 숭배할만한 돌이 되는 것입니다. 더더군다나 자연 그대로의 돌이 그 모양까지 특이하게 생겼다면 바로 그 돌은 우리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떠받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문화를 보면, 신의 성품이 바위와 돌로 표현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신이 나타나는 장소 역시 바위와 돌이 있는 곳입니다. 고대의 신전이 세워지는 장소가 바위 언덕이나 돌산을 택하는 이유가 그러합니다. 이런 돌에 대한 종교적인 사상이 그대로 가나안 사람들에게도 있었고, 가나안 땅에서 생활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못하고 가나안의 종교에 영향을 받은 모습들이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하23:8 성문의 산당들을 헐어 버렸으니 이 산당들은 그 성읍의 지도자 여호수아의 대문 어귀 곧 성문 왼쪽에 있었더라
위의 사진은 텔 단 성문 앞에 있는 산당의 한 일부입니다. 이 산당의 한 가운데에는 아주 잘 생긴 돌 하나가 우뚝 세워져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천하대장군처럼 저 돌이 텔 단을 지켰던 수호신이었던 것입니다. ‘종교 개혁을 일으켰던 구약의 많은 왕들, 선지자들이 성문의 산당을 헐어 버렸다, 무너 뜨렸다, 더럽게 했다’는 그런 표현들은 모두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향을 받은 돌 그 자체를 숭배한 가나안의 종교를 훼파시켰다는 의미가 됩니다.
여호와를 믿는 유대인들 역시 그 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논했습니다. 어떤 신이 영원한 신이냐, 어떤 신이 견고하고, 어떤 신이 요동함이 없는 신이냐. 유대인들은 주저함없이 여호와만이 영원하며, 여호와만이 견고한 참 신으로 고백했습니다.
시18: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
이제 신약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고전10:4에서는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전합니다. 또한 벧전 2:4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곧 산 돌이십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리스도는 영원하시고, 그리스도는 견고하여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는 뜻입니다.
이제 성경은 시선을 돌려서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향합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너희는 돌이 되십시오!”(벧전2:5) 무슨 뜻입니까?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말고, 태풍이 불어도 쓰러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핍박과 환난이 오더라도 견고한 그 믿음을 지켜내라는 것입니다.
핍박과 환난을 이기면 우리들은 어떤 선물을 받을까요? 놀랍게도 요한계시록은 우리가 받을 선물도 돌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계2:17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올림픽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선수들에게는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을 목에 걸어줍니다. 얼마나 가치가 있습니까? 그 메달 자체가 값어치 있는 금, 은, 동으로 되어 있습니다. 핍박과 환난을 이겼습니다. 성경은 금도 아니요 은도 아닌 돌을 준다고 합니다. 왜 돌을 준다고 약속할까요. 끝까지 참고 견딘 자들에게 주는 최고의 인증서가 아닐까요.
혹시 주변에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고, 환경들이 있습니까?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여러분도 산 돌이 되어 꿋꿋하게 한번 살아보십시오. 마지막 순간 여러분의 손에는 자랑스러운 흰 돌이 쥐어져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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