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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바다(얌)-2

by 아하바 2020. 5. 21.

 

바알과 얌

1929년 라스 샤므라에서 발견된 우가릿 서판에서 소개되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알입니다. 우가릿 서판에 따르면, 바알과 바다()가 한바탕 큰 전쟁을 치릅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바알을 숭배했습니다. 바알은 비를 내리게 함으로써 농사를 잘 짓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 대해서는 악한 존재로써 인식하였습니다. 얌은 바다의 신으로, 인정머리 없고 극악무도하기 짝이 없는데다가 힘이 엄청 세고 인간을 괴롭히는 신었습니다(참조, 18:4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얌에 대한 이미지가 성경 곳곳에서 나타나는데, 그가 바로 바다 속에 거하는 무시무시한 괴물, 일테면 리워야단, , 라합, 로탄, 악어입니다. 얌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악어보다 더 큰 악어를 연상해봅시다(29:3, 32:2 “큰 악어”). 그리고 리워야단을 상상해 보십시오. 리워야단의 특징을 사27:1에서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리워야단은 날랜 뱀이고, 꼬불꼬불한 뱀입니다. 74:1214에서 리워야단은 머리가 여러 개 있습니다. 13:1에서는 바다의 짐승을 묘사하고 있는데, 뿔이 열 개가 있고, 머리가 일곱 개가 있습니다.

 

이런 무시무시한 바다의 괴물이 백성들을 괴롭힌다면, 두렵지 않겠습니까? 마치 요나처럼 말이죠.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2:3) 그러나 아무리 무섭고 불행을 가져다주는 바다의 괴물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스리기도 하시고, 잠재우시기도 하십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얌은 리워야단과 같이 무섭고 날랜 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한 번으로 얌은 고요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크고 광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바다의 흉용함을 다스리시며 그 파도가 일어날 때에 평정케 하시나이다”(89:9)

 

예수 그리스도와 바다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제자들이 노를 저어 건너편으로 가실 때에 바다()에 큰 광풍이 불었습니다. 큰 광풍(4:37)은 오늘날의 허리케인과 같은 그런 어감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종말론적인 특징으로 종종 언급되는 지진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보라! 바다에 큰 지진이 일어났는데..”(8:24) 즉 바다에 허리케인과 지진과 같은 난리가 난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이럴 때일수록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환난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3:24-26, 11:18-19, 3:56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바람을 무서워하였고, 바다()를 무서워하였습니다. 만약 이들이 바람을 무서워하였고, 바다를 무서워한 것이 바다에 거하는 리워야단, 큰 악어와 같이 얌신의 무지막지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면, 그 두려움의 정도는 더 엄청났을 것입니다. 누가 감히 얌신에게 도전장을 낼 수 있으며, 누가 능력이 있어 얌신에게 대항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제자들은 무서워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스스로 죽게 되었다(8:24)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다급하게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그 이후 제자들은 자기들의 눈을 의심할만한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시더니 바람과 바다를 평정하시는 것이 아닌가요!! 예수님께서 일어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는데, 이때 꾸짖다라는 단어는 예수님께서 귀신을 꾸짖을 때도 이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17:18). 즉 예수님은 바다를 귀신처럼 하나의 영적인 세력으로 간주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얌에 대해서 익히 잘 알고 있는 어부들입니다. 지금까지 어부 생활하면서 얌, 혹은 바다의 용들과 싸운 사람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누가 얌을 향해서 꾸짖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우리의 스승 예수님은 마치 귀신에게 꾸짖듯, 바다()에게도 꾸짖는 것이 아닌가요. “잠잠하라! 고요하라!” 있을 수 없는 광경을 그들은 목격한 것입니다. 너무 놀란 가슴제대로 통제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일인가하고...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4:41)

 

그들은 왜 그렇게 두려워했을까요? 예수님의 명령으로 바다가 잠잠해졌으니 순간적으로는 놀랐지만 이내 기뻐서 박수를 칠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두려움은 지속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그들은 서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했던 이유는 사실 다른 데 있었습니다. “바다를 다스리는 것은 여호와만이 갖는 능력이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만이 갖고 있는 그 다스리는 능력을 예수님께서 갖고 계셨기 때문에 그들은 놀라워했고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주께서 바다의 흉용함을 다스리시며 그 파도가 일어날 때에 평정케 하시나이다”(89:9)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보이는 어려움에 직면하셨습니까? 어떤 두려움이 오더라도, 어떤 환난이 오더라도 밀려나지 마십시오. 물러서지 마십시오. 우리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신다면 예수님께서 평정하실 것입니다. “바람아 바다야 잠잠하라!”

 

잔잔한 갈릴리 호수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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