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알과 얌
1929년 라스 샤므라에서 발견된 우가릿 서판에서 소개되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알입니다. 우가릿 서판에 따르면, 바알과 바다(얌)가 한바탕 큰 전쟁을 치릅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바알을 숭배했습니다. 바알은 비를 내리게 함으로써 농사를 잘 짓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얌”에 대해서는 악한 존재로써 인식하였습니다. 얌은 바다의 신으로, 인정머리 없고 극악무도하기 짝이 없는데다가 힘이 엄청 세고 인간을 괴롭히는 신었습니다(참조, 시18:4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얌에 대한 이미지가 성경 곳곳에서 나타나는데, 그가 바로 바다 속에 거하는 무시무시한 괴물, 일테면 리워야단, 용, 라합, 로탄, 악어입니다. 얌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악어보다 더 큰 악어를 연상해봅시다(겔29:3, 32:2 “큰 악어”). 그리고 리워야단을 상상해 보십시오. 리워야단의 특징을 사27:1에서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리워야단은 날랜 뱀이고, 꼬불꼬불한 뱀입니다. 시74:12‐14에서 리워야단은 머리가 여러 개 있습니다. 계13:1에서는 바다의 짐승을 묘사하고 있는데, 뿔이 열 개가 있고, 머리가 일곱 개가 있습니다.
이런 무시무시한 바다의 괴물이 백성들을 괴롭힌다면, 두렵지 않겠습니까? 마치 요나처럼 말이죠.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욘2:3) 그러나 아무리 무섭고 불행을 가져다주는 바다의 괴물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스리기도 하시고, 잠재우시기도 하십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얌은 리워야단과 같이 무섭고 날랜 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한 번으로 얌은 고요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크고 광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바다의 흉용함을 다스리시며 그 파도가 일어날 때에 평정케 하시나이다”(시89:9)
예수 그리스도와 바다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제자들이 노를 저어 건너편으로 가실 때에 바다(얌)에 큰 광풍이 불었습니다. 큰 광풍(막4:37)은 오늘날의 허리케인과 같은 그런 어감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종말론적인 특징으로 종종 언급되는 지진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보라! 바다에 큰 지진이 일어났는데..”(8:24) 즉 바다에 허리케인과 지진과 같은 난리가 난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이럴 때일수록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환난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잠3:24-26, 욥11:18-19, 시3:5‐6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바람을 무서워하였고, 바다(얌)를 무서워하였습니다. 만약 이들이 바람을 무서워하였고, 바다를 무서워한 것이 바다에 거하는 리워야단, 큰 악어와 같이 얌신의 무지막지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면, 그 두려움의 정도는 더 엄청났을 것입니다. 누가 감히 얌신에게 도전장을 낼 수 있으며, 누가 능력이 있어 얌신에게 대항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제자들은 무서워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스스로 죽게 되었다(눅8:24)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다급하게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그 이후 제자들은 자기들의 눈을 의심할만한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시더니 바람과 바다를 평정하시는 것이 아닌가요!! 예수님께서 일어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는데, 이때 “꾸짖다”라는 단어는 예수님께서 귀신을 꾸짖을 때도 이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마17:18). 즉 예수님은 바다를 귀신처럼 하나의 영적인 세력으로 간주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얌에 대해서 익히 잘 알고 있는 어부들입니다. 지금까지 어부 생활하면서 얌, 혹은 바다의 용들과 싸운 사람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누가 얌을 향해서 꾸짖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우리의 스승 예수님은 마치 귀신에게 꾸짖듯, 바다(얌)에게도 꾸짖는 것이 아닌가요. “잠잠하라! 고요하라!” 있을 수 없는 광경을 그들은 목격한 것입니다. 너무 놀란 가슴… 제대로 통제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일인가하고...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막4:41)
그들은 왜 그렇게 두려워했을까요? 예수님의 명령으로 바다가 잠잠해졌으니 순간적으로는 놀랐지만 이내 기뻐서 박수를 칠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두려움은 지속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그들은 서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했던 이유는 사실 다른 데 있었습니다. “바다를 다스리는 것은 여호와만이 갖는 능력”이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만이 갖고 있는 그 다스리는 능력을 예수님께서 갖고 계셨기 때문에 그들은 놀라워했고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주께서 바다의 흉용함을 다스리시며 그 파도가 일어날 때에 평정케 하시나이다”(시89:9)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보이는 어려움에 직면하셨습니까? 어떤 두려움이 오더라도, 어떤 환난이 오더라도 밀려나지 마십시오. 물러서지 마십시오. 우리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신다면 예수님께서 평정하실 것입니다. “바람아 바다야 잠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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