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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대 유대인 교육 2 - 아버지의 역할

by 아하바 2020. 7. 10.

개인적인 경험

처음 이스라엘 땅을 밟고 열정적으로 히브리어를 배우고 있을 때였습니다. 길을 걷는데 9~10살쯤 되어 보이는 유대인 아이들 3명이 앉아서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배운 히브리어를 사용해 보기 위해서 그 아이들에게 접근해 말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주제가 던져졌습니다. 아이들은 저와 메시야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하고 싶어 했습니다. 히브리어를 구사하는 것이 아직 걸음마 단계였던 저는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 세 명은 돌아가면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건은 제게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비록 그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아듣지 못했지만,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말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9~10살 아이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렇게 자유롭게 의사를 개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아버지의 역할

바로 이전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고대의 유대인들은 만 3세가 되기 전까지 어머니에게 말씀을 배웠습니다. 그 후부터 주로 아버지가 자녀의 교육을 전담했습니다. 아버지는 주로 질문과 토론을 사용하여 아이를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재미가 없으면 쉽게 따라오지 못합니다. 재미를 가미하면서 아이들이 잘 따라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중간 중간에 노래를 활용했습니다. 유월절에는 유월절의 의미가 담긴 노래를, 초막절에는 초막절의 의미가 담긴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그 외에도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거나 간식을 주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아이들이 재미있게 성경 공부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구약 시대, 신약 시대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은 이런 방법을 사용하여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의 예를 들면 유치원에서 이제 막 글자를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은 꿀이 듬뿍 발려 있는 과자를 먹습니다. 다음과 같은 말씀에 기초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19:9~10). 즉 여호와의 말씀을 배우는 것이 꿀보다 달다는 말씀을 인식시키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존중하는 교육

아이들이 점점 성경 공부에 익숙해지면 아버지는 질문과 토론을 적절히 융합했습니다. 아이들은 중요한 절기 의식이나 예배 모임에 항상 함께하며 이것이 무엇입니까?” 물었고, 아버지는 질문에 대답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아주 중요한 정서가 깔려 있습니다. 아이들을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아이가 물을 때 아버지는 아이의 질문과 토론 주제에 최선을 다해 답하며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자신의 의사를 충분히 개진할 수 있었고, 더 자신감을 갖고 아버지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존중을 받으며 교육받은 아이들은 만 13세가 되면 바르 미쯔바즉 성인식을 치렀습니다. 성인으로 인정받으며 아버지 세대, 할아버지 세대까지 가족 공동체 모두에게 축복을 받았습니다.

 

바르 미쯔바의 한 장면

 

오늘날 주일학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부모의 역할을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6:4~7). 부모는 아이를 존중하며 말씀 교육에 힘써야 합니다. 가정에서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배울 수 있도록, 말씀에 대해 자유롭게 질문하며 토론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youtu.be/96krAe1E3j4  (유튜브는 아래 영상이랑 같음)

 

 

 

참고 문헌

Ralph Gower, The New Manners & Customs of Bible Times(Chicago: Moody Press, 2005).

알프레드 에더스하임, 메시아, 황영철, 김태곤 옮김(서울: 생명의 말씀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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